Full transcript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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0:06오늘은 칠판에 써 있는 대로
0:11순서에 맞춰서 말씀을
0:14전하겠습니다.
0:21마태복음 27장 33절에
0:24예수님이 못박히신
0:27그 땅
0:29왜 해골이라 불렸을까?
0:3327장 마태복음 33절.
0:37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
0:39이르러
0:43예수님은 성 안에서
0:45죽지 않으셨습니다.이
0:48성문 밖으로 끌려나가 죽으셨습니다.
0:54예전부터 성문 받은 사람들이 가장
0:57더러운 것을 내다버려던
0:59버리던 곳이었습니다.
1:02그만큼 예수님은 더럽게 취급을
1:05받았습니다.
1:07기독교의
1:08본질은 무엇이냐면
1:11사역이 있는 것도 아니고
1:16내가 잘 축복받고 잘 살아보겠다는
1:19것도 아니고
1:22본질은 희생입니다. 희생.
1:25희생.
1:27그 본질을 벗어난 어떠한 행위도
1:32하나님께서는
1:35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거죠. 근데
1:38희생하는데 가장 장애물이 뭐냐면
1:40교만입니다. 교만.
1:44골고다는 예루살렘 성벽 바깥에 있던
1:47낮은 언덕입니다.이
1:49히브리 말로는 굴레트라고 합니다.
1:53해골이라는 뜻입니다. 이것이 로마어로
1:56라틴어로 옮기면서 갈보리라고 했는데
1:59이것도 역시 해골이라는 뜻입니다.
2:02근데이 말은 원래 사람의 머리 수을
2:05셀 때 쓰던 단어였습니다.
2:08성경이 백성의 술을 셀 때 굴레트라는
2:12말을 썼어요.
2:14성경은 성박 진바기 어떤 곳인지 여러
2:18번에 걸쳐서 설명합니다.
2:20병들어서 부정하게 된 사람은 짐밖에
2:23나가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. 하나님을
2:27저주한 사람, 하나님을 저주한 사람,
2:30또 하나님에게 저주받았다 생각되는
2:32사람은 진 밖으로 끌어내서 돌로
2:35쳤습니다.
2:36시체에 다 더러운 사람, 더러워진
2:39사람도 짐 밖으로 내보내졌습니다.
2:43심지어 사람들이 대변을 보는 것도
2:45성분 안에서는 못 했습니다. 성문
2:48밖으로 나가서 대변을 보아야
2:51했습니다.
2:53진밖은 부정한 것, 저주받은 것,
2:55더러운 것이 나가는 자리였습니다.이
3:00제가 미국에서는 성문박 교회라는
3:03교회를 다녔는데요.
3:05그때는 성문박이라는 말을 왜 목사님이
3:09그렇게 제목을 정하셨는지 몰랐었어요.
3:11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역시
3:15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에는 더러운
3:17오물로 보였던 것입니다.
3:20여러분 눈에는 예수님이 더러운 어물로
3:23보이죠?
3:26여러분은 여러분을 속일 수가 없어요.
3:29꼭 필요할 때만 예수님을 찾기 때문에
3:32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. 자기
3:35부인이라고 하는 거는 자기가 타인을
3:37위해서 희생하는 건데 희생은 안 하고
3:41자기 걸 먼저 챙기기 때문에
3:43그렇습니다. 자기 유익을 구하는
3:45사람들은 아무리 예수님이 주님이라고
3:48입으로 얘기해도 예수님을 오물로
3:51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
3:53됩니다. 예수님은 바로 그것으로 끌려
3:57나갔습니다.
3:58병자가 쫓겨나던 자리로 저주받은 자가
4:01돌았던 자리로 사람들이 똥을 버리던
4:04자리로 나가셨습니다.
4:06거기서 죽으셨습니다.
4:10죄가 없으신 분이 부정한 자가 되시고
4:12저주받은 자가 되신 것입니다. 그럼
4:16왜 하필 그 자리로였을까요?
4:19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거기였기
4:21때문입니다.
4:23명심하십시오.
4:25우리가 있어야 될 자리가 바로
4:27거기였기 때문에 우리 대신 거기에
4:30서셨습니다.
4:31부정한 자, 저주받은 자, 버려질
4:34것은 우리였습니다.
4:36그런데 예수님이 그 자리로 대신 걸어
4:38나가셨습니다.
4:40놀라운 것은 이런 일이 갑자기 정해진
4:43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. 성경은
4:46어린양이 세상에 있기도 전에 이미
4:49죽임을 당하셨다고 말합니다.
4:52골고다는 머릿수를 세던 말에서 나왔다
4:54그랬죠. 그 자리에서 세워져야 할
4:57머리는 우리였습니다. 그러나 그날 그
5:01자리에 서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.
5:04성경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
5:06약속하셨습니다.
5:07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
5:09것이라고
5:11머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 땅에서
5:14예수님이 뱀의 머리를 밟으셨습니다.
5:17세상이 있기 전에 정하시고 사람이
5:20처음 죄를 지었을 때 약속하시고 그
5:23땅에서 이루신 것입니다. 해골의
5:25땅에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.
5:29성경 속 그 땅은 오늘도 예수님을
5:32가르치고 있습니다.
5:34자, 왜 해골인지 이런 이제 알았죠?
5:37우리가서야 될 자리입니다. 머릿수.
5:39우리가 죽어야 될 자리. 거기에
5:42예수님이 대신 계셨습니다. 그리고
5:45사탄의 머리를 거기서 부셔
5:48버렸습니다.
5:52엘리야는
5:55450명의
6:00바의 선지자라고 소위 말하는
6:02사람들하고 대결을 버리죠.
6:04갈멜산이라는 곳에서.
6:07근데 놀랍게도이 과정을 보면
6:10재단에다가 물을 갖다 붙습니다.
6:14불이 내려와야 하는데 물을 12통을
6:17갖다 부어요.
6:20불을 붙여야 하는 자리에 물을
6:22부었다는 것입니다.
6:24갈멜산은
6:26이쪽이 지중해라 그러면은 여기가
6:28이스라엘이고 여기 레바논이면 이쪽에
6:30이렇게 보시면 갈릴리오스가 있고 쭉
6:33요단강처럼 돼 있고 밑으로 쭉 있죠.
6:35사회도 있고 그런데 여기이 지중해
6:38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렇게
6:40불어요. 그리고 이제 능선은 이렇게
6:43뻗어 있어요. 그래서 항상 지중에서
6:45비가 이렇게 넘어오니까이 항상 푸른
6:47산이에요. 그런데 사람들은 그 비를
6:51바알이 준다고 믿었습니다.
6:53바알은 비와 농사를 맡은 신으로
6:55여겨졌고 갈멜산은 바알의 안방 같은
6:59곳이었습니다. 바로 그 갈멜산에서
7:02대결이 벌어졌습니다.
7:05한쪽은 바알을 섬기는 사람 450명.
7:08다른 한쪽은 엘리야 혼자입니다.
7:11바알쪽이 먼저 합니다. 아침부터
7:13한날까지 부르짖습니다. 재단주의를
7:16뛰며 자기 몸을 상하게 합니다. 아무
7:19소리도 아무 응답도 없습니다. 이제
7:22엘리야 차례가 되었습니다. 엘리야는
7:25돌 12개로 제단을 쌓았습니다.
7:27성경은 거기서 12개의 돌이 이스라엘
7:3112지파라고 써여 있습니다.
7:34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제단으로 세운
7:36것입니다. 그리고 둘레에 도랑을 파고
7:40그다음에 물 12통을 갖다 붓습니다.
7:44재물도 나무도 다 젖고 도랑에도 물이
7:48찹니다. 그리고 짧게 기도합니다.
7:51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옵니다.
7:54재물도 타고 나무도 타고 흙도 타고
7:57도랑의 물까지 김없이 태웁니다.
8:00왜 물을 부었을까요? 이것입니다.
8:03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은 불이
8:05내려와야 될 자리에 왜 물을
8:07부었을까요?
8:10물을 부으면은
8:12불이 타지 않는 건 다 알죠. 근데
8:15왜 물을 부었을까요? 그것은 바로
8:18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
8:20그런 것입니다.
8:22사람의 상식으로는 물이 있으면 불은
8:25붙지 않습니다.
8:27사람이 손댈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.
8:31젖은 제단에 불이 붙었다면 그것은
8:33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.
8:36그리고 그 불이 무엇을 태웠는지 한번
8:38보도록 하겠습니다.
8:4012돌로 쌓은 제단도 태웠습니다. 즉
8:43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그 돌까지 다
8:46탔습니다. 원래 죄인은 이렇게
8:50하나님의 진노로 다 없어져야 하는
8:52자들이라는 것입니다. 하늘에서 내려온
8:55그분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. 그런데
8:57그 진노가 거기 나온 사람들에게는
9:01떨어지지 않았습니다. 단지 재물 위에
9:04떨어졌습니다. 재물이 우리 대신 맞은
9:08것입니다. 훗날 골고다 해골
9:11갈보리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.
9:15하나님의 모든 진노가 한 사람 위에
9:19쏟아집니다.
9:21그래서 우리는 그 불을 맞지
9:23않습니다. 갈멜살은 사람이 불을
9:26피우는 산이 아니라 불이 내려오는
9:28산이었습니다.
9:30바로 그 땅이 해골입니다. 그리고
9:33갈보리입니다. 그 땅은 바로 예수
9:35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습니다.
9:41삼손의 두 가지 이야기를 좀 보도록
9:42하겠습니다.
9:49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매우 특별한
9:51인물로 삼손이 있습니다.
9:55사사 삼손의 1대기를 보도록
9:57하겠습니다. 근데 두 가지 이야기라고
9:59하는 거는 다른 측면으로 약간씩 두
10:02개의 이야기를 하겠다이 말입니다.
10:04삼손의 이야기는
10:07영웅의 활약상을 넘어서 우리에게
10:10무엇을 전달하고 있는가?
10:12삼손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의 뜻이
10:14무엇인지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.
10:17삼손은 히브리어로 క్ష이라고
10:20합니다.
10:22존는
10:24작은 태양 또는 태양의 사람이라는
10:27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.이
10:30이름은 그의 탄생이 당시 이스라엘에게
10:32어둠속 한줄기 빛과 같았음을
10:35암시합니다.
10:36블레셋의 앞재 아래에 고통받던
10:39이스라엘 백성에게 삼손의 등장은
10:41희망의 불씨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.
10:44하지만 그의 이름이 가지는 또 다른
10:46의미는 그가 비록 태양처럼 강한 힘을
10:49가졌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힘에
10:52의존하다가 자초하는 인간의 한계를
10:55보여주는 역설적인 상징이기도 합니다.
10:59즉 개인적인 영광을 추구하는 인간의
11:01본성을 담고 있음을 암시하고
11:03있습니다. 삼손의 이야기는 이스라엘
11:06백성이 블레셋의 앞재 아래 신음하던
11:09시기에 시작됩니다. 당시 이스라엘은
11:12하나님을 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
11:15행하던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시기를
11:17보내고 있었습니다. 이러한 상황
11:20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
11:22구원하기 위해 한 인물을 준비하셨는데
11:24바로 삼손입니다. 삼손의 부모인
11:28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아이를 갖지
11:31못해서 깊은 상실감 속에 살고
11:33있었습니다.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
11:36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이는
11:38태어날 때부터 나시린이 되어 블레셋
11:41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
11:43시작할 것이라고 상세하게
11:45예언합니다.이는
11:46그저 우연한 탄생이 아니라 하나님의
11:49구원 계획 속에서 특별한 목적을
11:52가지고 태어난 인물임을 명확히
11:53보여줍니다. 삼손의 탄생은 기적적인
11:56것이었으며이는 그에게 맡겨 맡겨질
12:00사명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미리 알려
12:02주는 것이었습니다. 나시린은 누구를
12:05뜻합니까? 나시인이란 하나님께
12:08구별되어 받쳐진 사람을 의미합니다.
12:10특별한 서원을 통해서 사람의 하나님께
12:14자신을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.
12:17나시에는 포도나무 소산을 멀리하고
12:19머리에 삭도 즉 면도를 대지 않으며
12:22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는 등 엄격한
12:24규례를 지켜야 했습니다. 삼손은
12:27이러한 나시린의 서원 중 특히
12:29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에 큰
12:31의미를 두었습니다. 그의 엄청난 힘의
12:34근원이 바로이 나시린의 서원에 특히
12:37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외적인 표증에
12:39있었기 때문입니다. 그러나 그의
12:41이야기는 단순히 힘센 영웅의 무용담이
12:45아닙니다. 오히려 그의 삶은 당시
12:47이스라엘 백성의 무력함과 불가능성을
12:50폭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
12:52통해서만 진정한 구원이 완성됨을
12:54예표하는데 그 핵심적인 의미가
12:57있습니다. 삼손의 삶은 인간의 한계와
13:00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계획을 동시에
13:03보여주는 그러한 서사입니다. 첫째,
13:06삼손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
13:09모형으로 등장합니다. 삼손은
13:12구원자로서의 메시아를 예표하는
13:13인물입니다. 그의 삶의 여러 요소들은
13:16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그
13:18의미를 미리 보여주는 듯합니다. 그의
13:21인생 여정 하나하나가 메시아의 고난과
13:23구원의 길을 암시하고 있습니다. 그는
13:26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구별된
13:27나시린으로 부름받았습니다.
13:30나시린의 삶은 자기 부인의 삶을 통해
13:33타자를 위한 희생과 섬김을 보여주는
13:36것입니다. 여기 나시린의 특징이
13:38나옵니다. 자기 부인을 통해 타인을
13:42위해서 섬기고 희생하는 것입니다.
13:46여러분은 나시린이 누군지 아십니까?
13:49삼손은 결코 나시린이 아닙니다.
13:54삼손에게서 나시린이라 얘기했다고
13:56삼손이 나시린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.
13:58진정한 나시린은 예수 그리스도밖에
14:01없습니다. 그걸 예표한 것이에요.
14:05삼손의 삶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을
14:07위한 희생의 삶이었습니다.
14:09이때 삼손 자리에 예수님을 넣어 보면
14:11금방 알아요.이는 이는 우리를 위해
14:14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시고 종의
14:16형체를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를
14:18모용합니다. 인간은 나시린의 서원을
14:21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. 삼손
14:24역시 자신의 약정과 죄성으로 인해
14:27나시린의 서원을 온전히 지키지
14:29못했습니다. 그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인
14:33행동을 여러 차례 보였습니다. 그렇게
14:36예수님께서 참된 나시린으로 오셔서
14:39모든 백성을 살리시는 완전하고 흠없는
14:42희생을 이루셨음을 우리는 깊이 깨달을
14:44수 있습니다.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
14:47분으로 온전한 나시린의 삶을
14:48사셨습니다. 삼손은 딥나의 블레셋
14:51여자와 결혼하려 했습니다. 당시
14:54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압제하던
14:57이방 민족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이
14:59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
15:02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.
15:04또한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
15:06세상을 사랑하던 영적 간음을
15:08상징하기도 합니다. 그러나
15:11동시에이 사건은 죄인인 우리와
15:13연합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
15:15무조건적인 사랑을 예시하기도 합니다.
15:18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찾아오시고
15:21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
15:24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.
15:27죄인과 함께 식사하시고 죄인을 친구라
15:30부르신 예수님의 모습은 삼손이 이방
15:32여인과 매주를 했던 관계 속에서도
15:35힘이 하나마 엿볼 수 있는 사랑의
15:37그림자입니다. 물론 삼손의 행동은
15:40인간적인 욕망에서 비록된 것이었으나
15:42그 결과는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
15:44있었습니다. 삼손은 결국 블레셋의
15:47손에 붙잡혀 가사라는 성읍에서 두
15:50눈이 뽑히고 돌를 돌리는 비참한 최를
15:53맞이합니다.
15:55도시는 블레셋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며
15:58성경에서 바벨론 성업의 모형으로 자주
16:00비유됩니다.이는
16:01죄악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이며 삼손이
16:05고통받았음을 보여줍니다. 하지만 그의
16:08마지막 순간 삼손은 하나님의 능력을
16:10힘입어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다운
16:13신존을 신전을 무너뜨리며 죽습니다.
16:16이때 죽은 블레셋 사람수가 그의
16:18평생에 죽인 자들보다 훨씬 많았다고
16:20기록되어 있습니다.이 이 삼손의
16:23죽음은 왕이 되고자 하는 자기
16:25중심적인 자하숭배자들 즉 마누아와
16:29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얻는
16:31근거가 됩니다.이는
16:33메시아가 죄인의 자리에 내려와 그들과
16:35함께 죽음으로써 구원을 성취함을
16:37보여주는 것입니다. 예수 그리스도께서
16:40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된 우리를
16:43구원하신 사건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.
16:46삼손은 죽음으로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
16:48시작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
16:51영원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.
16:54이처럼 삼손의 희생적인 죽음은 예수
16:57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의
16:58그림자입니다. 삼손이 블레셋의 성문을
17:01뜯어 가지고 헤브론으로 옮긴 사건도
17:04메시아를 예표합니다. 헤브론은
17:07약속의 땅에 위치한 중요한
17:09성업이었으며 아브라함과 다윗 왕조가
17:12왕조의 역사가 깃든 곳입니다.이 이
17:14사건은 메시아께서 희생을 통해 대적의
17:17문 즉 마귀의 세력을 부수고
17:19승리하시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모습을
17:22예표합니다.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시고
17:25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
17:26연상케 합니다. 그의 마지막 죽음 곧
17:29두 눈이 뽑히고 돌을 가는 행위는
17:32영적으로 소용되고 굶주인 죄인들을
17:35대신하여 메시아가 희생되고 그들을
17:37먹여 살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.
17:40삼손이 돌을 돌렸죠. 그러나 실제로는
17:43금의 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
17:45먹여 살리기 위해서 돌리신 것입니다.
17:48눈이 뽑힌 삼손은 죄로 인해 영적인
17:51눈이 멀어버린 인간의 모습을
17:55몇도를 가는 행위는 무의미한 고통과
17:57노예 상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.
18:00그러한 죄인들을 위해 메시아께서 친히
18:03고난을 감당하시고 생명의 양식을
18:05주시는 것입니다. 둘째, 삼손의 삶은
18:09또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실패와
18:11추악한 실체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.
18:14삼손의 행동, 예를 들어 딥나
18:17여자와의 결혼이나 자신의 힘을
18:19과시하는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이
18:21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명성, 영광,
18:24가치, 쾌락을 위해 일로 매진하던
18:27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. 그들은
18:30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들의 만족을
18:32추구했습니다. 삼손의 삶은 이스라엘
18:35백성 전체 상태를 정난하게 보여주는
18:37표상인셈입니다.
18:39삼손의 힘은 그의 머리카락에 읽는
18:41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
18:43허락하신 나시린의 서원의 내제된
18:46권능이었습니다.
18:47그의 머리카락이 잘렸을 때 힘을 잃은
18:49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의 구별이
18:52사라지면 죽은 흙 불과한 존재라는
18:55자기 부인의 상징입니다.이는
18:59이는 우리 또한 우리의 힘이 아닌
19:00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살아가는
19:03존재임을 깊이 깨닫게 합니다. 우리가
19:06스스로의 능력과 자원을 자랑할 때
19:09우리는 영적으로 머리카락이 잘린
19:11삼손처럼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
19:13있습니다. 진정한 힘은 하나님과의
19:15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. 삼손이
19:18목마음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던
19:21에낫의 고백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
19:23중요한 전환점을
19:25맞이합니다. 에나골레 부르짖는 자의
19:29샘이라는 뜻입니다.이 고백은이
19:31세상에서 아무리 강하고 부유하며 많은
19:34업적을 쌓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
19:37생수가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
19:39존재임을 인정하는 절박한 항복을
19:41나타냅니다. 삼손은 블레셋과의
19:44전투에서 승리한 후 목이 말라 죽게
19:46될 위기에 처했을 때이 고백을
19:48했습니다. 인간이 인간적인 승리 뒤에
19:51숨겨진 영적 갈증을 보여주는
19:53것입니다.이 이 고백은 결국 용서
19:56용사됨으로서의 추구 추구와 자신의
19:59이름을 남기려는 인간의 욕망을
20:01부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
20:03드러내십니다.
20:06며칠 전에 여기 계신 분 중에 두
20:08분이 저의 꿈에 나타나서 어떤 결단을
20:11저에게 얘기했습니다.
20:13우리는 중국으로 가기로 했어요.
20:16중국에 가서 마지막 인생을 마치면서
20:20선교 활동을 하기로 했어요라고
20:23저에게 와서 꿈에서 얘기하셨습니다.
20:30그냥 그런 각오를 들었어요.
20:34삼손은이 고백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
20:37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
20:39의존하는 자리로 나아갔던 것입니다.
20:42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
20:44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할 한계에
20:46직면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향한
20:48진정한 부르짖음이 터져 나올 수
20:50있습니다. 결론적으로 삼손의 이야기는
20:52우리에게 단순히 영웅을 본받으라는
20:54교훈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. 대신에
20:57인간의 자기의 힘과 지혜에 대한
20:59신뢰와 의존, 즉 육적 자한은 반드시
21:02해체되어야 하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
21:05의존하는 자리로 밀려 내려가야만
21:07진정한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
21:09명확히 가르치십니다.
21:11삼손의 이야기는 결국 예수님의
21:14이야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
21:16외에는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이 없음을
21:19분명하게 보여줍니다. 우리는 삼손의
21:21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
21:24죄성을 직시하고 동시에 우리를
21:27구원하시기 위해이 땅에 오신 예수
21:28그리스도의 크고
21:31무한한 사랑과 희생을 다시금 깨닫게
21:33됩니다. 삼손은 불완전한 인간
21:36구원자였습니다.
21:37예수님은 완전하고 흠없는
21:39구원자이십니다.
21:40삼손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구원을
21:42시작했지만 예수님은 영원하고 완전한
21:45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.
21:47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힘과 지혜를
21:50의지하려는 유혹에 빠질 때마다 삼손의
21:52이야기를 기억하며 오직 하나님께 모든
21:55것을 맡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할
21:58것입니다. 삼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
22:00끊임없이 질문합니다. 당신은 누구의
22:03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? 당신의
22:06구원자는 진정 누구입니까?
22:09이렇게요.
22:11두 번째 이야기입니다. 삼손.
22:16사랑하는 성도 여러분.
22:18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 거대한
22:20힘과 영적인 승리를 꿈꾸곤 합니다.
22:23왜냐하면 예수님이 내 편이니까.
22:26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인간의 역사는
22:28언제나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의
22:31자리를 가르키고 있습니다. 성경에
22:34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가장
22:36강력한 힘을 가졌던 사사 삼손.
22:39우리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냐면 이렇게
22:41기억합니다. 사자의 입을 짓고 나귀
22:44턱뼈 하나로 천명을 쓰러뜨린 무적의
22:47영웅으로 생각합니다. 그러나 복음의
22:50관점에서 삼손의 생애를 깊이
22:52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인간의 찬란한
22:55영웅담이 아니라 철저하게 무너질
22:56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이 정난하게
23:00기록되어 있습니다. 삼손은 태어날
23:02때부터 거룩하게 구별된 나시인이었지만
23:05그의 삶은 언제나 자신의 눈에 복이
23:07좋은 대로 행하는 정욕의
23:08노예였습니다.
23:10세상의 유혹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게
23:12무너졌던 한 죄인의 모습. 그것이
23:15바로 성경이 고발하는 삼손의 진짜
23:17얼굴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
23:19자화상입니다. 우리는 흔히 삼손이
23:22들릴라에 데릴라의 꿰매에 빠져 힘을
23:26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도덕적인 경계와
23:29교훈만을 찾으려고 합니다. 하지만
23:31그것은 사람의 행위를 앞세우는 생각일
23:33뿐입니다. 삼손의 비극은 어느날
23:36갑자기 찾아온 우연한 실수가
23:38아니었습니다. 그는 평생 하나님의
23:40거룩한 언약의 징표를 가지고 있었으나
23:43끊임없이 자신의 힘과 욕망을 신뢰하며
23:45살아왔습니다. 이방 여인의 무릎에
23:48머리를 누이고 마침내 나시린의 비밀인
23:52머리털이 밀려 나갈 때까지 그는
23:54자신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
23:56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.
23:58머리털이 잘려나간 순간 성경은 그가
24:01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
24:04깨닫고 슬피 울었다고 합니다. 이것이
24:09바로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설 수
24:11있다고 믿는 모든 인간의 비참한
24:13착각이자 내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
24:16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
24:17출발점입니다.
24:19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힌 삼손의
24:21결말은 참혹하게 이럴데 없습니다. 두
24:23눈이 뽑힌 채 여러분 만일에 본인의
24:26눈이 두 개가 뽑혔어요. 생각해
24:28보세요.
24:31최사슬에 묶여 어두운 옥중에서 곡식
24:33몇돌를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고
24:35말았습니다. 한때 천하를 호용하던
24:38천하 장사가 원수들의 놀이게감이
24:40되어서 짐승처럼 몇도를 돌리고 있는이
24:42비참한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. 눈이
24:46뽑혔다는 것은 그가 평생 육신의
24:48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 살아온
24:50대가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
24:52심판의 상징입니다.
24:54인간이 자신의 힘과 의를 자랑하며
24:57세상의 헛된 유혹의 마음에 유혹의
24:59마음을 빼앗길 때 그 종말은 언제나
25:02영적인 눈이 멀고 어둠의 감옥에
25:05갇치는 파멸 뿐입니다. 인간이 스스로
25:07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헛된 기대는
25:09이차가운 몇돌 아 산산 조각이
25:11났습니다. 인간의 자랑과 교만이
25:13머무는 종착력은 오직 수치와 절망의
25:17감옥일 뿐임을 성경은 묵묵히 증언하고
25:19있습니다. 원수들은 다원 신전에
25:22모여서 대규모의 축제를 버리며 삼손을
25:24끌어내어서 제주를 부리게 했습니다.
25:26그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신이 원수를
25:29손에 넘겨 주었다고 우상을 찬양하고
25:30기뻐 뛰어 놀았습니다. 하나님의
25:33영광은 땅에 떨어진 것처럼 보였고
25:36언약의 백성은 가장 밑바닥에서 조롱과
25:38멸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. 그러나
25:40바로 그 가장 깊은 수치와 조롱의
25:42자리에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
25:45역사가 은밀하게 태동하고 있었습니다.
25:47삼손에 깎였던 머리가 다시 자라나기
25:50시작했습니다.
25:52머리들이 다시 자라났다는 것은 삼손의
25:54육체적인 힘이 저절로 되살아나다는
25:56뜻이 절대 아닙니다. 그것은 인간이
25:58처절한 배방과 타락에도 불구하고
26:01자신의 백성을 향한 언약을 결코
26:03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
26:05은혜가 다시 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
26:07거룩한 복음의 증표였습니다. 사사기
26:1016장 28절. 비참하게 물어진
26:13삼손의 가장 절박한 기도를 우리는
26:15들려 우리는들을 수 있습니다. 삼손이
26:17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
26:20구하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.
26:23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
26:25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
26:28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
26:31하고이
26:33부르짖음은 과거의 자신의 영광을
26:36되찾겠다는 영웅의 외침이
26:38아니었습니다. 자신의 전적인 무능력과
26:40죄악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
26:43긍휼만을 구하는 죄인의 마지막
26:45절규였습니다.
26:46삼손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
26:48자격을 내세 내 내세울 수 없습니다.
26:51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구원받아야
26:53한다는 오만함을 완전히 내려놓고 오직
26:56하나님의 긍휼의 긍휼의 자신의 온
26:59존재를 던진 것입니다.이 기도는
27:02인간의 의가 그리고 인간의 힘이
27:05완전히 해체된 자리에서만 터져나오는
27:07참된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.
27:10우리는 고난의 밑바닥에 던져질 때
27:12비로소 내가 얼마나 무력한 죄인인지를
27:13깨닫게 됩니다. 삼손은 눈이 성했을
27:16때 하나님을 온전히 보지 못했으나
27:18두이 뽑히고 흑암에 갇혀서야 비로소
27:21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을 의지하는
27:23영적인 눈을 뜨게 되습니다.
27:25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힘이 충만할 때
27:27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
27:29가능성이 끝나고 자신의 파산을
27:31선언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일하기
27:33시작합니다. 십자가의 복음은 언제나
27:35우리의 힘을 빼앗고 우리의 자랑을
27:38부수며 오직 은혜만을 바라보게 만드는
27:40거룩한 절망의 자리에서 찬란하게 빛
27:43바랍니다. 이제 삼손은 신전을
27:45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두 기둥 사이에
27:47서게되었습니다.
27:50어린 소년의 손에 이끌려 기둥을
27:53더듬어 더듬어 만지는 삼손. 그의
27:56손길에는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던져
28:00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
28:01결현함이 묻어납니다. 수천 명의
28:04블레셋 방백들과 백성들이 지붕과
28:06신전안을 가득 배우고 그를 조롱하고
28:08있었습니다. 그러나 삼손은 그들의
28:10조롱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시고
28:12붙으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귀를 언약의
28:15귀를 기울였습니다. 세상의 거대한
28:18권력과 우상의 신절 한복판에서 눈먼
28:20삼선은 오직 믿음으로 그 거대한
28:22기둥을 껴놨습니다. 인간의 모든 힘이
28:25사라진 자리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
28:27믿음의 손이 우상의 경고한 요새를
28:30뒤흔들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. 사사기
28:3316장 30절에 이렇게 그 장면을
28:36선포하고 있습니다. 삼손이 이르되
28:39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
28:41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집이
28:44곧 무너져 그 안에 모든 방백과 온
28:47백성에게 덮히니 삼손이 죽을 때 죽인
28:50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
28:51많았더라.이 이 구절은 결코 한
28:54영웅이 비장한 자살 특공대로
28:57활동했다는 뜻이 아닙니다. 이것은
28:59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으로 보는 눈물을
29:01눈을 가질 때 비로소 열리는 십자가
29:04승리의 장엄한 예표입니다. 삼손은
29:06자신이 살아서 승리하려고 하지 않고
29:09원수들과 함께 죽음으로써 대적의
29:11권세를 단번에 멸망시켰습니다.
29:13삼손이 죽으면서 무너뜨린 두 신전의
29:16기둥 그 정체를 알아보도록
29:18하겠습니다. 삼손이 두 팔을 벌려서
29:21성전의 두기등을 밀어내며 자신의
29:23목숨을 대속물로 내어던진이 모습은
29:26골고다 언덕적 십자가 위에서 두 팔을
29:28벌려 온 인류의 죄의 짐을 짊어지신
29:31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는
29:33모형입니다. 예수님께서는 세상을
29:36세상을 힘과 무력으로 정복하지
29:38않으셨습니다. 오히려 가장 낮은
29:39자리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
29:42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의
29:45견고한 기둥을 완전히
29:47무너뜨려셨습니다.
29:49그 두 기둥은 우리의 옛자입니다.
29:55삼선이 죽을 때, 삼손이 죽을 때,
29:57죽인 자가 살았을 때보다 많았던
29:59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
30:02우리의 옛자를 수많은 옛자를 함께
30:05죽이셨습니다. 그리고 사탄의 머리를
30:08상하게 하시고 영원한 승리를
30:10완성하셨습니다. 세상의 눈으로 볼 때
30:13십자가는 철저한 실패이자 어리석은
30:14패배처럼 보였습니다. 빌라의 법정에서
30:17조롱 당하고 가시관을 쓰시고
30:20피흘리시고 죽어가시던 예수님 모습은
30:23블레셋 사람들에게 조롱받던 눈먼
30:25삼손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.
30:27그러나 세상이 조롱하며 생례를 외치던
30:30바로 그 순간 사탄의 나라는 영원히
30:33무너져 내렸습니다. 예수 그리스도의
30:35죽으심은 무기력한 배 패배가 아니라
30:39죄의 권세를 단번에 멸하시고 자기
30:42백성을 영원한 흑암에서 건져내신
30:44하나님의 지혜이자 절대적인
30:46능력이었습니다. 죽음으로서 생명을
30:48낳고 패배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하는
30:50십자가의 신비가 바로 삼손의 마지막
30:53죽음에서 오롯이 새겨져 있는
30:55것입니다. 그러므로 우리는 삼손의
30:57생애를 보며 결코 우리의 열심이나
31:00행위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. 삼손의
31:03구원과 승리는 그의 도덕적 온전함이나
31:06충성스음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
31:08아니었기 때문입니다. 그는 끝까지
31:11허물투성이었고 눈이 뽑히는 징계를
31:13받아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. 그러나
31:15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실패자의 연약함과
31:18죽음마주도 구속의 거대한 도구로
31:20사용하셨습니다. 이것이 바로 갑없이
31:23주어진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
31:26선물인 것입니다. 복음은 우리에게
31:28삼손처럼 위대한 영웅이 되라고
31:30요구하지 않습니다. 우리는 성도가
31:32되어야 합니다.
31:35우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.
31:39우리는 그 무엇도 되려고 하면 안
31:40됩니다.
31:42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넘어지는
31:44죄인인지를 인정하고 우리를 되신하여
31:46십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짊어지신
31:49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라고 부드럽게
31:52성경은 권면하고 있습니다. 그러나
31:54철저하게 단호합니다. 삼손을 파멸로
31:57이끌었던 원수들의 다곤 신전 기둥은
32:00실상 인간이 쌓아올린 거짓된 우상과
32:03교만의 상징이었습니다. 오늘날 우리
32:05안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국권이서
32:07있는 자아의 기둥들이 존재합니다. 내
32:10의로움과 내 지식과 내 도덕적
32:12성취라는 우상의 기둥들이 우리
32:14마음속에 굳게 세워져 하나님을
32:17대적하고 있습니다. 그러나 십자가의
32:19은혜가 우리 심령에 임할 때 그
32:21견고하던 인간의 기둥들은 낭김없이
32:24무너져 내립니다. 내 힘으로
32:26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착각이
32:28부서지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
32:30참된 구원의 반석임을 보아야 합니다.
32:33깨어지고 무너지는 자리에 임하는 참된
32:36자유. 그것이 바로 복음이 우리에게
32:38베푸는 영원한 안식입니다.
32:42그러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에
32:44임할 때 그 경고하던 인간의 기둥들을
32:46남김없이 무너져 내립니다. 삶의
32:49무게에 지친 분들 그리고 자신의
32:51연약함 때문에 날마다 낙심하고
32:53넘어지는 우리를 향해서 복음은
32:55선포합니다. 삼손처럼 실패하고 모든
32:58것을 잃어버렸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
33:00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흔들리지
33:02않습니다. 세상은 우리의 실패를
33:04조롱하고 정죄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
33:06부서진 중심을 받으시고 십자가의
33:09보혈로 다시 덮어 주십니다. 우리가
33:11의지해야 할 것은 나의 결단이나
33:14어설픈 노력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서
33:16사망 권세를 멸하시고 모든 구원을
33:19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
33:21순종입니다. 그분의 죽으심이 나의
33:24죽음이 되었고 그분의 부활이 나의
33:25영원한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. 우리의
33:28영적인 눈이 밝아져 바라보아야 할
33:30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.
33:32눈이 뽑힌 삼손이 마지막 순간에
33:34자신의 시선을 하늘로 향했던 것처럼
33:37우리 역시 세상의 헛된 영광에서 눈을
33:40돌려 골고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
33:42합니다. 거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
33:45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손길이 오늘
33:47우리의 모든 죄책감과 두려움을 단번에
33:51쓰니다. 내가 이룬 성공이나 실패의
33:54마음을 뺏기지 마십시오. 구원은 오직
33:57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
33:59통해 이루신 일방적인 선물입니다. 그
34:02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깨달을 때
34:04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평안과 감사의
34:07눈물을 흘리게 됩니다. 삼손에
34:09무너지는 두 기둥은 오늘 우리에게
34:11옛사람의 종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.
34:14죄에 매어 종노릇하던 우리의 옛본송은
34:17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
34:19완전히 죽었습니다. 그리고 이제
34:21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
34:22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.
34:25나를 위해 살던 삶에서 벗어나를
34:28사랑하사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 아들의
34:32바로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거룩한
34:34안식을 누려야 합니다. 신전의 자네가
34:37쏟아져 내리던 그 심판의 자리에서
34:39언약의 구원이 완성되었듯이 우리의
34:42모든 자아가 허물어지는 바로 그
34:44십자가의 자리에서 참된 하나님의
34:46나라가 시작됩니다. 그러므로 이제
34:48두려움 없이 십자가의 은혜인 보좌
34:51앞으로 나아가십시오. 내 손에 진
34:53것이 아무것도 없습니까? 괜찮습니다.
34:56지나온 삶의 온통 후회뿐입니까?
34:58괜찮습니다. 지나온 삶이 온통
35:00상처뿐입니까? 괜찮습니다. 결코
35:03낭망하지 마십시오. 머리털이 다시
35:06자라나듯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
35:08지금도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
35:10흘러넘치고 있습니다. 원수의 몇도를
35:13돌리던 수치의 자리에서 우리를
35:15건져내어 영원한 의의 식탁으로
35:17인도하시는 주님의 강한 손을
35:19신뢰하십시오.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
35:22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가 오늘 우리의
35:25모든 삶과 영혼을 영원토록 굳건하게
35:28지켜 주실 것입니다. 오늘 삼손에
35:30무너진 두 기둥을 통해서 선포된이
35:33십자가의 복음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
35:35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자
35:37언약입니다. 인간의 힘과 도덕적 의는
35:40아침 한계처럼 사라지지만 우리를
35:42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
35:44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원하고
35:46견고합니다. 세상의 모든 화려한
35:49신전들이 무너져 내릴지라도 십자가의
35:52터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들은
35:53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. 내 힘과
35:56자격을 내려놓으십시오. 오직 예수
35:59그리스도만의 그리스도의 보혈만을
36:01의지하며 나아가는 복된 은혜의 삶이
36:04되어야 합니다.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
36:07덧붙으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안에서
36:09영원한 안식과 평강을 누리셔야
36:11합니다. 넘어져도 다시 일으키시는
36:14은혜, 실패 속에서도 기어히 구원을
36:15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
36:18붙들고 있음을 명심하여야 합니다.
36:20십자가의 능력은 오늘 우리의 삶의
36:22묶임을 풀고 진정한 생명의 길로
36:25인도하는 것입니다.이 이 놀라운
36:28은혜의 복음이 삶의 무게로 낙심한
36:30수많은 우리들에게 흘러넘치기를
36:36기원합니다.
36:38이렇게 제가 나레이션하듯이 빠르게
36:41읽었습니다. 왜냐면 오늘도 전할게
36:43너무 많아요. 그러나 우리는 항상
36:45무슨 생각을 하냐면
36:48내가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
36:49생각이에요.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
36:52않는다면
36:54너무나 비참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.
36:57성경을 읽어 보시면요. 성경은 딱
36:59하나예요.
37:01성도가 되라는 거예요.
37:04성도가
37:06사도나 무슨 사명자처럼 하려고 하지
37:08말라는 것입니다. 그것이 기독교는
37:13그 본질상
37:15신부를 찾아오시는 신랑이
37:18주권대로 멋대로 할 수 있다는
37:19것이에요. 그러기 때문에 그 신랑이
37:22원하는 걸 딱 알았으면 그 일을
37:24하라는 것이에요. 그 외의 일들은
37:27여러분의 구원과는 무관한 일들입니다.
37:30수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거기에 쏟을까
37:33봐 걱정하는 것입니다. 왜냐면 이미
37:36그분은 일을 하고 계세요. 우리
37:38안에서. 그러니 내가 특별하게 따로
37:41일한다는 그런 인간적 사명감이라든지
37:44인간적인 결단이라든지 이런 것들이
37:47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지를
37:49알아야 하는 것입니다.
37:52잠시 쉬다가 나머지 강의를 하도록
37:53하겠습니다.